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1989년 개봉하였고,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감독으로 임권택이, 주인공은 강수연(순녀 역), 진영미(진성스님 역), 안병경(송 기사 역), 유인촌(현종 역) 등이 맡아 열연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불교적인 색채를 띄면서 출가와 해탈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줄거리, 출가의 의미, 총평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 줄거리
영화는 순녀가 덕암사라는 절에 승녀가 되기 위하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진성스님은 순녀를 타일러 돌아가라고 하는데, 순녀는 은선 스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은선 스님은 순녀에게 출가는 버리는 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순녀는 승녀가 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동안, 절에 견학온 사람이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이 무엇이 다르냐고 묻게 됩니다. 순녀는 그 사람에게 그 둘은 똑같고, 온 세상을 구원시키는 대승불교적인 입장을 이야기해 줍니다. 속세에서 순녀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쟁 참전 후 운봉스님이 되었고, 엄마 제주 댁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순녀는 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새로 온 홀아비 현종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현종이 술 먹고 취한 후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순녀는 더욱더 현종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어느 날 기차 역에서 현종을 보고 같이 기차를 타고 가게 됩니다. 순녀는 현종을 따라 대전을 가서 부여 낙화암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있게 됩니다. 그날 밤에 순녀는 여관에서 현종과 한방에서 떨어진 채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학교에서 문제가 되어 학교를 못 다니게 됩니다. 한편 진성스님과 순녀의 불교관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 이 둘은 이해를 못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녀는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됩니다. 진성 스님은 대학생들에게 소승불교적인 입장으로 이야기 하면서 의견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순녀는 절에 온 어떤 술 취한 남자 박현우를 구해주고, 그 남자는 순녀를 따라 절까지 들어가 난동을 부리고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은선 스님은 순녀에게 그 사람과 속세로 가라고 하여 순녀는 파계승이 됩니다. 떠나기 전 은선 스님은 순녀에게 속세로 가는 네가 진짜 너인지, 아니면 여기 절에 남아 있는 혼령이 진짜 너인지를 알아보라고 합니다. 순녀는 박현우와 함께 광산에서 혼인 생활을 시작하지만, 광산의 막장이 무너져 박현우는 죽게 됩니다. 모든 인간적인 희망을 버린 채 순녀는 간호사로 섬으로 가는 도중에 진성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순녀는 그 사람이 죽은 후 어떤 장애인 남자를 도우면서 살다가 그 사람도 죽어서 섬으로 간다고 진성스님에게 말합니다. 순녀는 자신이 결혼하여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가 보살의 행위 같다고 은연중에 진성스님에게 이야기합니다. 순녀는 섬으로 가서 생명을 구하는 조력자인 간호사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순녀는 학생이었을 때 같이 대전에 갔었던 현종 선생님의 시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순녀는 현종선생님과 한 방에 있었다는 것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현종선생님은 자신 때문에 순녀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순녀와 함께 부여 낙화암에 갔던 일을 회상하면서 시를 써 내려갔던 것입니다. 현종선생님의 괴로운 심정이 시를 통하여 순녀에게 전달이 되어 순녀는 괴로워합니다. 순녀는 섬에서 운전기사로 있던 홀아비 송기사를 불쌍히 여겨 송기사와 같이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어느 날 송기사는 순녀와의 관계 도중에 죽게 됩니다. 장면이 바뀌어 은선 스님은 죽어가면서 진성스님을 맞이하여, 달마스님 얼굴에 왜 수염이 없는지 물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은선 스님은 계속해서 순녀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순녀가 은선 스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은선 스님은 순녀에게 처음 속세로 갈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속세로 떠난 육신의 네가 진짜 너인지, 아니면 절에 남아있는 너의 혼령이 진짜 너인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죽은 은선 스님의 화장을 하게 되고, 순녀는 죽은 재 가운데 은선 스님의 사리를 찾으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출가의 의미
이 영화는 불교의 교리 중 하나인 출가의 의미를 잘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불교에서 출가란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 인간 세상의 관계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이 관계를 통하여 인간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불교의 가장 큰 교리는 해탈이라고 합니다. 해탈이란 인간의 모든 고뇌와 고통 그리고 인연을 끊어내는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란 자신의 인간적인 모든 것을 끊어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영화의 순녀는 자신이 출생에서부터 가지고 있는 고통과 아픔을 벗어버리기 위하여 출가를 하고 승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순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파계승이 되었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녀는 그것이 부처가 가르쳐준 출가를 통한 구도자의 의미로 생각하였으며, 해탈을 위한 깨달음을 위해 수행하는 보살의 의미로 여겼던 것입니다.
총평
이 영화는 불교의 교리적인 면을 순녀와 진성스님을 통하여 대비하여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녀는 대승불교 차원에서 출가와 해탈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진성스님은 소승불교의 차원에서 출가와 해탈을 추구하게 됩니다. 먼저 진성스님의 입장입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구도하고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보살이 되는 것이 출가와 해탈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속세란 더러운 것이며, 순녀의 파계승도 더러운 것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진정한 구도입니다. 그래서 은선 스님은 진성스님에게 달마스님이 왜 수염이 없는지를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순녀의 입장입니다. 순녀는 구도자의 길이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파계를 통하여 만나는 남자를 도와주기 위하여 자신의 최선을 다합니다. 순녀는 그 남자들을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만나는 남자들마다 죽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선 스님을 찾아갑니다. 은선 스님은 다시 한번 순녀에게 물어봅니다, 그러나 순녀는 이미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될 때 온전한 내가 된다는 불교의 커다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순녀는 그것을 통하여 속세의 추함과 구도의 성스러움을 통한 아름다움 모두 다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때 진정한 보살이 되어 해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영화는 순녀와 진성스님을 통하여 통하여 관객들에게 불교의 진리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